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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에는 두 종류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한쪽은 외친다 — AI를 위해 마크다운으로 바꿔 달라. 정부 보고서를 LLM에 넣으면 답이 엉망이라는 IT 업계의 푸념. 다른 한쪽은 답한다 — HWP라는 바이너리 포맷을 XML로 바꾸겠다. 두 합창은 서로를 비껴 지나간다.
지난 두 편의 글을 통과해 온 우리는 이 합창의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한쪽도 다른 한쪽도 — 문서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부재가, 우리가 지금 마주한 가장 깊은 위기의 근원이다.
그릇을 바꾸어도
정부의 XML 전환 대응을 비유하자면 이런 셈이다. 외국 손님이 우리 음식을 먹기 어려워한다고 호소하자, 우리는 젓가락을 플라스틱에서 나무로 바꿔드리겠다고 답한다. 손님이 원한 것은 포크였는데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포맷이 아니라 구조다. 한국 공문서에 흔한 조직도를 떠올려 보자. 가운데 위에 "원장" 셀이 있고, 그 아래로 빈 셀들이 수직선의 역할을 하며, 좌우로 빈 셀들이 수평선을 이루고, 양 끝에 "정책부원장"과 "행정부원장" 셀이 자리 잡는다. 사람의 눈은 이것을 한순간에 위계 관계로 읽지만, 이 정보를 XML로 풀어 헤치면 3행 7열의 표, (1,4) 셀에 텍스트, (2,4) 셀은 비어 있고 좌측 테두리 실선… 같은 정보 더미만 남는다. 원장은 부원장의 상급자라는 의미는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시각 인지가 추론해 주는 정보일 뿐이다.
HWPX 파일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정부 표준 문서 포맷으로도 채택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LLM에 넣어보면 여전히 답답하다. 포맷이 텍스트인지 바이너리인지가 문제가 아니다. 문서의 의미 구조가 시각적 레이아웃에 녹아 있어 추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빈 셀과 테두리 스타일로 그린 그림은, 어떤 마크업으로 옮겨도 그림으로 남는다.
AI 업계가 마크다운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로 달라"는 푸념이 아니다. 마크다운은 다음을 강제한다. 제목은 #으로 — 시각적 크기가 아니라 의미적 위계로. 목록은 -로 — 들여쓰기 모양이 아니라 항목 관계로. 표는 단순한 행과 열로 — 셀 병합과 빈 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2차원 데이터로. 요청의 본질은 한 문장이다. "문서를 그리지 말고 적어라." 이것은 형식의 요구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요구다.
다만 마크다운 자체가 답은 아니다. 그것은 표준이 흩어진 경량 변환 문법에 가깝고, 메타데이터·전자서명·복잡 구조 표현·장기 보존성에서 모두 결함을 지닌다. 100년 보존을 약속한 국가 기록 문서를 마크다운으로 받는다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 마크다운은 해답이 아니라 증상이다 — 현재 한국 공문서가 얼마나 의미 구조 추출이 어려운지를 드러내는 증상이지, 그 자리를 영구히 대체할 후보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의 진짜 풀어야 할 문제는 포맷이 아니라 작성 규범이고, 작성 규범이 아니라 사고 양식이다. 그러나 —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 사고 양식의 변경 또한 모든 문서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2편에서 본 文의 차원이 거기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두 영역의 구분 — 데이터와 文
물론 모든 한국 공문서가 文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출장 정산서와 분기 통계 보고서를 두고 "이것은 우주의 질서를 현시하는 의례"라고 우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한국 공문서의 상당 부분은 단순히 데이터를 비효율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그 부분은 마땅히 현대화되어야 한다. 마크다운이든, 구조화된 도메인 특화 XML이든, 시맨틱 마크업이든 — 무엇이든 좋다.
그러나 모든 문서를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문서는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한다. 헌법, 외교 문서, 의례 문서, 국가 기록, 종묘제례의 의주(儀註), 대통령 취임식의 식순 — 이런 영역은 AI 가독성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의궤를 마크다운으로 바꾸자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 부칙의 표를, 외교 의전의 좌석배치도를 마크다운으로 바꾸자는 말은 누군가 한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이분법이다. 데이터의 영역과 文의 영역을 구분하는 안목. 전자는 마음껏 구조화하고 마크업하고 AI 친화적으로 만들 일이다. 그러나 후자는 다른 원칙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그것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디지털 변환은 어디까지나 부속적인 기록으로만 취급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논쟁이 빈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쪽은 마크다운을, 다른 한쪽은 XML을 외치지만, 양쪽 모두 모든 문서가 기계 가독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번역 불가능한 文의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논의에서 빠져 있다.
이미 일어난 참극 — 전자결재의 사례
이 구분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우리는 이미 한 번 목격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 도입된 전자결재 시스템이 그 사례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의 디지털화가 아니었다. 한국의 결재 양식은 — 2편에서 보았듯이 — 가로로 펼쳐져 모든 자리가 동시에 현전하는 공시적 구조였다. 그러나 전자결재 시스템은 결재선을 순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절차로 모델링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결재자 ID를 리스트로 저장하고, 각자가 순서대로 "승인" 버튼을 누르면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는 구조. 이 구조는 사실상 일본식 세로형 결재의 기계화다. 그러나 그 일본식 흐름조차 根回し라는 사전 조율 문화가 빠진 채로 이식되었다. 한국의 양식 위에 일본식 흐름의 논리를 얹고, 일본의 사전 조율 문화는 빼버린 — 세 양식의 단점만 모은 잡종이 만들어졌다.
이 잡종이 무엇을 죽였는가. 첫째, 자리의 평탄화. 종이 결재에서는 도장의 크기, 인주의 색감, 친필 사인의 필체, 찍힌 위치의 미묘한 차이 — 이 모든 것이 그 자리의 무게를 담는 시각적 차이였다. 文이 작동하던 자리들. 전자결재에서 이 모든 것은 동일한 폰트의 텍스트와 동일한 크기의 디지털 도장 이미지로 환원되었다. 정명의 시각적 위계가 픽셀 단위로 평탄화되었다. 둘째, 책임의 분산이 책임의 소멸로 변질. 종이 결재에서 도장은 물리적 행위였다 — 인주를 묻히고, 위치를 정하고, 힘을 주어 찍는 동작 자체가 내가 이것에 동의했다는 신체적 각인이었다. 전자결재의 "승인" 버튼은 이 신체성을 완전히 제거했다. 마우스 클릭 한 번. 그 위에 대결(代決) 기능이 더해진다 — 비서가, 부하 직원이, 자동화된 매크로가 상사의 ID로 로그인하여 "승인"을 누르는 일상.
가장 기괴한 것은 결재 형식은 더 엄격해졌는데 결재의 의미는 더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종이 시절에는 결재선에 도장이 다섯 개만 찍혀도 시각적으로 답답했고, 그 시각적 피드백 자체가 작성자에게 자제력을 행사했다. 전자결재에서는 결재선에 열 명을 넣든 스무 명을 넣든 화면은 깔끔하다. 그러니 일단 넣고 보자가 된다. 책임 회피의 가장 안전한 방법은 결재선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라인이 길어질수록 각 결재자는 더 적게 읽는다. "어차피 위에서 본 거겠지", "어차피 아래에서 검토했겠지". 사고가 터지면 열다섯 명이 승인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서가 나온다. 형식상 모든 자리가 정명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자리도 그 자리의 무게를 지고 있지 않은 — 양식의 시체다.
이것이 *참극(慘劇)*이다. 비극(悲劇)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한 파국이라면, 참극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인식되지 않은 채로 일어난 파국이다. 전자결재의 도입을 회고하는 글들을 들춰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반대 논쟁이 거의 없었다. 학계도 언론도 행정도 그 변화를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로만 다루었다. 결재 양식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 정명의 감각, 자리의 윤리, 양식이 시각화하던 권력 구조 — 에 대한 질문은 어디서도 진지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게으름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 질문을 던질 언어 자체가 없었다. 1990년대 즈음 한국 사회는 이미, 문서를 효율과 정보의 어휘로만 사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왜 참극이 반복되는가 — 다섯 결여
여기서 우리는 진짜 무거운 질문에 도달한다. 왜 그 참극이 반복되는가. 지금 마주한 AI 전환이 같은 종류의 참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우리는 그 반복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다섯 가지 결여가 누적되어 있다.
첫째, 도구주의의 그림자. 전자결재 설계 회의실에서 화이트보드 앞에 그려지던 것은 결재 흐름의 다이어그램이었다. 박스와 화살표. 입력과 출력. 이 다이어그램은 이미 한 가지 전제를 품고 있다 — 결재란은 도구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이 전제 위에서는 결재 양식의 시각적 디테일이 모두 부수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양식이 그 자체로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시야에서 배제하는 어휘. 빠른 근대화를 거치며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묻는 데 익숙해졌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가 곧 무엇인가가 되었다. 결재란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명의 의례이기도 했다. 도구주의는 동시에를 사유하지 못한다.
둘째, 효율 담론의 비대칭. 도구주의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효율 담론이다. 얻는 것은 측정 가능하지만 잃는 것은 측정 불가능하다. 결재 시간 30%가 단축되었다는 통계는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정명의 시각적 의례가 사라졌다"는 손실은 어떤 KPI에도 잡히지 않는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효율 담론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회계장부를 그린다. 비용란은 비어 있는 채로.
셋째, 결정의 익명성. 전자결재 시스템을 누가 결정했는가. 답할 수 있는 단일 인격은 없다. 위원회와 보고서와 회의록의 누적이 있을 뿐이다. 이 익명성 안에서는 사유가 일어날 주체가 없다. 비판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익명적 결정 구조 앞에서는 비판조차 허공을 향해 말하는 일이 된다. 지금 AI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넷째, 시간이 없다. 19세기 말 개항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통과해 온 변화의 양과 속도는 인류사적으로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매 단계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동일했다 — 빨리 따라잡으라. 이 속도 안에서 양식이 무엇을 담고 있었는가를 사유할 여유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후발 근대화의 구조적 운명이었다. 그러나 잘못이 아닌 것과 결과가 가벼운 것은 다르다. 사유 없이 통과한 모든 전환의 자리마다 애도되지 않은 죽음이 쌓여 왔다.
다섯째, 어휘 자체가 없다. 가장 깊은 결여는 이것이다. 한국어에서 文의 어휘는 박물관에 보관된 단어가 되어 있다. 학술 텍스트에서나 등장하고, 일상 발화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결재란에 대해 우리가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는 효율, 결재 라인, 권한 위임 — 행정학과 경영학의 용어들이다. 정명과 자리의 어휘로 결재란을 사유하는 발화는 일상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어휘가 없으면 사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보호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호되지 않는 것은 사라진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한 세기 통과해 온 길이고, 그 길의 끝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말할 수 없게 된 자리에 도착해 있다.
회복의 자리 — 세 가지 작은 실천
진단만 하고 떠나는 것은 또 하나의 도구주의일 뿐이다. 그러나 답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한 번의 효율 담론에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답 대신 방향만 제안한다.
어휘를 되살리는 일. 박물관에 보관된 文의 어휘를 일상으로 다시 끌어내는 일. 결재란을 정명의 의례로 부를 수 있는 사회, 빈 셀을 餘白으로 부를 수 있는 사회, 양식을 수행으로 부를 수 있는 사회. 이것은 학자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비평가의 칼럼, 작가의 산문, 디자이너의 글, 평범한 사용자의 트윗 — 그 모든 자리에서 작은 어휘 사용이 누적될 때 일어나는 변화다.
느림의 회복. 모든 전환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 멈춰서 묻는 습관. "이 전환이 무엇을 데려가는가"를 묻는 그 짧은 멈춤이, 참극의 반복을 막는 가장 강력한 장치일 수 있다. 효율 담론은 이 멈춤을 비효율로 분류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효율의 자리가 文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익명성의 균열. 큰 결정의 자리에 얼굴을 되돌려 놓는 일. 누가 결정했는지를 묻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결정의 무게를 그 얼굴에 돌려놓는 일. 본질적으로는 사유의 주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사유가 일어나려면 사유하는 자가 호명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작은 일들이다. 거대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들. 그러나 文은 본래 그렇게 보존되어 왔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 다시 그어지는 작은 선들에 의해. 의궤를 그린 사관도, 결재란에 도장을 찍은 관료도, 다도의 말차를 저은 차인도 — 모두 작은 손동작들의 누적으로 文을 살려 왔다. 그것이 文이 사는 방식이다.
시리즈를 닫으며
세 편의 글을 통과해 오면서, 출발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은 드러난 것 같다.
1편에서 우리는 한국 표 문화의 역사적 깊이와 한·중·일의 갈래를 보았다. 조선 의궤에서 시작된 칸의 미학이 어떻게 현대 공문서까지 흘러왔는가, 그리고 같은 뿌리에서 세 사회가 어떻게 다른 길로 갈라졌는가. 2편에서 우리는 그 표 문화의 철학적 근원에 도달했다. 文과 禮, 정명, 餘白에 거주하는 것들. 그리고 한·일의 분기가 단순한 미감 차이가 아니라 정명을 시각화하는 두 정치철학이었음을. 3편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마주했다. AI 시대의 변형 압력, 이미 일어난 전자결재의 참극, 그것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다섯 결여, 그리고 회복의 자리.
처음에 나는 표 문화를 비효율로 보았다. 이제 그것이 환원 불가능한 文일 수 있음을 안다. 처음에 나는 양식을 도구로 보았다. 이제 그것이 세계의 현시일 수 있음을 안다. 처음에 나는 문제를 기술에서 찾았다. 이제 문제가 우리가 사유할 언어를 잃은 것에 있음을 안다.
이 시리즈가 답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질문을 다시 던질 자리는 마련하고 싶었다. 결재란 앞에서, 빈 셀 앞에서, 표 안의 표 앞에서,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이것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자리. 그 질문이 던져지는 곳에서만 文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르는 모든 "승인" 버튼 뒤에는, 수백 년 누적된 정명의 자리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을 고려에 다시 올리는 일 — 그것이 이 글들이 시도하려 했던 작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남겨 둔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모를 때, 우리는 그것을 잃지 않을 방법도 모른다. 첫 번째 일은 그래서 잃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그 앎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어쩌면 文의 작은 회복이 — 또는 적어도, 文의 작은 애도가 —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표 안에 글자를 담아온 그 오래된 손길이, 어쩌면 그 지혜를 우리 대신 기억해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비효율이라 부르며 지워버리기 전에, 한 번쯤은 그 손길의 의미를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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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의 죽음과 그 이후 — 표(表)로 읽는 文書 문화 ③
AI 시대, 우리가 잃고 있는 것
지금 한국 사회에는 두 종류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한쪽은 외친다 — AI를 위해 마크다운으로 바꿔 달라. 정부 보고서를 LLM에 넣으면 답이 엉망이라는 IT 업계의 푸념. 다른 한쪽은 답한다 — HWP라는 바이너리 포맷을 XML로 바꾸겠다. 두 합창은 서로를 비껴 지나간다.
지난 두 편의 글을 통과해 온 우리는 이 합창의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한쪽도 다른 한쪽도 — 문서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부재가, 우리가 지금 마주한 가장 깊은 위기의 근원이다.
그릇을 바꾸어도
정부의 XML 전환 대응을 비유하자면 이런 셈이다. 외국 손님이 우리 음식을 먹기 어려워한다고 호소하자, 우리는 젓가락을 플라스틱에서 나무로 바꿔드리겠다고 답한다. 손님이 원한 것은 포크였는데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포맷이 아니라 구조다. 한국 공문서에 흔한 조직도를 떠올려 보자. 가운데 위에 "원장" 셀이 있고, 그 아래로 빈 셀들이 수직선의 역할을 하며, 좌우로 빈 셀들이 수평선을 이루고, 양 끝에 "정책부원장"과 "행정부원장" 셀이 자리 잡는다. 사람의 눈은 이것을 한순간에 위계 관계로 읽지만, 이 정보를 XML로 풀어 헤치면 3행 7열의 표, (1,4) 셀에 텍스트, (2,4) 셀은 비어 있고 좌측 테두리 실선… 같은 정보 더미만 남는다. 원장은 부원장의 상급자라는 의미는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시각 인지가 추론해 주는 정보일 뿐이다.
HWPX 파일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정부 표준 문서 포맷으로도 채택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LLM에 넣어보면 여전히 답답하다. 포맷이 텍스트인지 바이너리인지가 문제가 아니다. 문서의 의미 구조가 시각적 레이아웃에 녹아 있어 추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빈 셀과 테두리 스타일로 그린 그림은, 어떤 마크업으로 옮겨도 그림으로 남는다.
AI 업계가 마크다운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로 달라"는 푸념이 아니다. 마크다운은 다음을 강제한다. 제목은
#으로 — 시각적 크기가 아니라 의미적 위계로. 목록은-로 — 들여쓰기 모양이 아니라 항목 관계로. 표는 단순한 행과 열로 — 셀 병합과 빈 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2차원 데이터로. 요청의 본질은 한 문장이다. "문서를 그리지 말고 적어라." 이것은 형식의 요구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요구다.다만 마크다운 자체가 답은 아니다. 그것은 표준이 흩어진 경량 변환 문법에 가깝고, 메타데이터·전자서명·복잡 구조 표현·장기 보존성에서 모두 결함을 지닌다. 100년 보존을 약속한 국가 기록 문서를 마크다운으로 받는다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 마크다운은 해답이 아니라 증상이다 — 현재 한국 공문서가 얼마나 의미 구조 추출이 어려운지를 드러내는 증상이지, 그 자리를 영구히 대체할 후보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의 진짜 풀어야 할 문제는 포맷이 아니라 작성 규범이고, 작성 규범이 아니라 사고 양식이다. 그러나 —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 사고 양식의 변경 또한 모든 문서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2편에서 본 文의 차원이 거기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두 영역의 구분 — 데이터와 文
물론 모든 한국 공문서가 文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출장 정산서와 분기 통계 보고서를 두고 "이것은 우주의 질서를 현시하는 의례"라고 우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한국 공문서의 상당 부분은 단순히 데이터를 비효율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그 부분은 마땅히 현대화되어야 한다. 마크다운이든, 구조화된 도메인 특화 XML이든, 시맨틱 마크업이든 — 무엇이든 좋다.
그러나 모든 문서를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떤 문서는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한다. 헌법, 외교 문서, 의례 문서, 국가 기록, 종묘제례의 의주(儀註), 대통령 취임식의 식순 — 이런 영역은 AI 가독성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의궤를 마크다운으로 바꾸자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 부칙의 표를, 외교 의전의 좌석배치도를 마크다운으로 바꾸자는 말은 누군가 한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이분법이다. 데이터의 영역과 文의 영역을 구분하는 안목. 전자는 마음껏 구조화하고 마크업하고 AI 친화적으로 만들 일이다. 그러나 후자는 다른 원칙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그것은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디지털 변환은 어디까지나 부속적인 기록으로만 취급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논쟁이 빈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쪽은 마크다운을, 다른 한쪽은 XML을 외치지만, 양쪽 모두 모든 문서가 기계 가독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번역 불가능한 文의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논의에서 빠져 있다.
이미 일어난 참극 — 전자결재의 사례
이 구분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우리는 이미 한 번 목격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 도입된 전자결재 시스템이 그 사례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의 디지털화가 아니었다. 한국의 결재 양식은 — 2편에서 보았듯이 — 가로로 펼쳐져 모든 자리가 동시에 현전하는 공시적 구조였다. 그러나 전자결재 시스템은 결재선을 순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절차로 모델링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결재자 ID를 리스트로 저장하고, 각자가 순서대로 "승인" 버튼을 누르면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는 구조. 이 구조는 사실상 일본식 세로형 결재의 기계화다. 그러나 그 일본식 흐름조차 根回し라는 사전 조율 문화가 빠진 채로 이식되었다. 한국의 양식 위에 일본식 흐름의 논리를 얹고, 일본의 사전 조율 문화는 빼버린 — 세 양식의 단점만 모은 잡종이 만들어졌다.
이 잡종이 무엇을 죽였는가. 첫째, 자리의 평탄화. 종이 결재에서는 도장의 크기, 인주의 색감, 친필 사인의 필체, 찍힌 위치의 미묘한 차이 — 이 모든 것이 그 자리의 무게를 담는 시각적 차이였다. 文이 작동하던 자리들. 전자결재에서 이 모든 것은 동일한 폰트의 텍스트와 동일한 크기의 디지털 도장 이미지로 환원되었다. 정명의 시각적 위계가 픽셀 단위로 평탄화되었다. 둘째, 책임의 분산이 책임의 소멸로 변질. 종이 결재에서 도장은 물리적 행위였다 — 인주를 묻히고, 위치를 정하고, 힘을 주어 찍는 동작 자체가 내가 이것에 동의했다는 신체적 각인이었다. 전자결재의 "승인" 버튼은 이 신체성을 완전히 제거했다. 마우스 클릭 한 번. 그 위에 대결(代決) 기능이 더해진다 — 비서가, 부하 직원이, 자동화된 매크로가 상사의 ID로 로그인하여 "승인"을 누르는 일상.
가장 기괴한 것은 결재 형식은 더 엄격해졌는데 결재의 의미는 더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종이 시절에는 결재선에 도장이 다섯 개만 찍혀도 시각적으로 답답했고, 그 시각적 피드백 자체가 작성자에게 자제력을 행사했다. 전자결재에서는 결재선에 열 명을 넣든 스무 명을 넣든 화면은 깔끔하다. 그러니 일단 넣고 보자가 된다. 책임 회피의 가장 안전한 방법은 결재선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라인이 길어질수록 각 결재자는 더 적게 읽는다. "어차피 위에서 본 거겠지", "어차피 아래에서 검토했겠지". 사고가 터지면 열다섯 명이 승인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서가 나온다. 형식상 모든 자리가 정명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자리도 그 자리의 무게를 지고 있지 않은 — 양식의 시체다.
이것이 *참극(慘劇)*이다. 비극(悲劇)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한 파국이라면, 참극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인식되지 않은 채로 일어난 파국이다. 전자결재의 도입을 회고하는 글들을 들춰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반대 논쟁이 거의 없었다. 학계도 언론도 행정도 그 변화를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로만 다루었다. 결재 양식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 정명의 감각, 자리의 윤리, 양식이 시각화하던 권력 구조 — 에 대한 질문은 어디서도 진지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게으름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 질문을 던질 언어 자체가 없었다. 1990년대 즈음 한국 사회는 이미, 문서를 효율과 정보의 어휘로만 사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왜 참극이 반복되는가 — 다섯 결여
여기서 우리는 진짜 무거운 질문에 도달한다. 왜 그 참극이 반복되는가. 지금 마주한 AI 전환이 같은 종류의 참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우리는 그 반복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다섯 가지 결여가 누적되어 있다.
첫째, 도구주의의 그림자. 전자결재 설계 회의실에서 화이트보드 앞에 그려지던 것은 결재 흐름의 다이어그램이었다. 박스와 화살표. 입력과 출력. 이 다이어그램은 이미 한 가지 전제를 품고 있다 — 결재란은 도구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이 전제 위에서는 결재 양식의 시각적 디테일이 모두 부수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양식이 그 자체로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시야에서 배제하는 어휘. 빠른 근대화를 거치며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묻는 데 익숙해졌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가 곧 무엇인가가 되었다. 결재란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명의 의례이기도 했다. 도구주의는 동시에를 사유하지 못한다.
둘째, 효율 담론의 비대칭. 도구주의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효율 담론이다. 얻는 것은 측정 가능하지만 잃는 것은 측정 불가능하다. 결재 시간 30%가 단축되었다는 통계는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정명의 시각적 의례가 사라졌다"는 손실은 어떤 KPI에도 잡히지 않는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효율 담론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회계장부를 그린다. 비용란은 비어 있는 채로.
셋째, 결정의 익명성. 전자결재 시스템을 누가 결정했는가. 답할 수 있는 단일 인격은 없다. 위원회와 보고서와 회의록의 누적이 있을 뿐이다. 이 익명성 안에서는 사유가 일어날 주체가 없다. 비판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익명적 결정 구조 앞에서는 비판조차 허공을 향해 말하는 일이 된다. 지금 AI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넷째, 시간이 없다. 19세기 말 개항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통과해 온 변화의 양과 속도는 인류사적으로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매 단계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동일했다 — 빨리 따라잡으라. 이 속도 안에서 양식이 무엇을 담고 있었는가를 사유할 여유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후발 근대화의 구조적 운명이었다. 그러나 잘못이 아닌 것과 결과가 가벼운 것은 다르다. 사유 없이 통과한 모든 전환의 자리마다 애도되지 않은 죽음이 쌓여 왔다.
다섯째, 어휘 자체가 없다. 가장 깊은 결여는 이것이다. 한국어에서 文의 어휘는 박물관에 보관된 단어가 되어 있다. 학술 텍스트에서나 등장하고, 일상 발화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결재란에 대해 우리가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는 효율, 결재 라인, 권한 위임 — 행정학과 경영학의 용어들이다. 정명과 자리의 어휘로 결재란을 사유하는 발화는 일상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어휘가 없으면 사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보호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호되지 않는 것은 사라진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한 세기 통과해 온 길이고, 그 길의 끝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말할 수 없게 된 자리에 도착해 있다.
회복의 자리 — 세 가지 작은 실천
진단만 하고 떠나는 것은 또 하나의 도구주의일 뿐이다. 그러나 답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한 번의 효율 담론에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답 대신 방향만 제안한다.
어휘를 되살리는 일. 박물관에 보관된 文의 어휘를 일상으로 다시 끌어내는 일. 결재란을 정명의 의례로 부를 수 있는 사회, 빈 셀을 餘白으로 부를 수 있는 사회, 양식을 수행으로 부를 수 있는 사회. 이것은 학자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비평가의 칼럼, 작가의 산문, 디자이너의 글, 평범한 사용자의 트윗 — 그 모든 자리에서 작은 어휘 사용이 누적될 때 일어나는 변화다.
느림의 회복. 모든 전환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 멈춰서 묻는 습관. "이 전환이 무엇을 데려가는가"를 묻는 그 짧은 멈춤이, 참극의 반복을 막는 가장 강력한 장치일 수 있다. 효율 담론은 이 멈춤을 비효율로 분류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효율의 자리가 文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익명성의 균열. 큰 결정의 자리에 얼굴을 되돌려 놓는 일. 누가 결정했는지를 묻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결정의 무게를 그 얼굴에 돌려놓는 일. 본질적으로는 사유의 주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사유가 일어나려면 사유하는 자가 호명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작은 일들이다. 거대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들. 그러나 文은 본래 그렇게 보존되어 왔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 다시 그어지는 작은 선들에 의해. 의궤를 그린 사관도, 결재란에 도장을 찍은 관료도, 다도의 말차를 저은 차인도 — 모두 작은 손동작들의 누적으로 文을 살려 왔다. 그것이 文이 사는 방식이다.
시리즈를 닫으며
세 편의 글을 통과해 오면서, 출발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은 드러난 것 같다.
1편에서 우리는 한국 표 문화의 역사적 깊이와 한·중·일의 갈래를 보았다. 조선 의궤에서 시작된 칸의 미학이 어떻게 현대 공문서까지 흘러왔는가, 그리고 같은 뿌리에서 세 사회가 어떻게 다른 길로 갈라졌는가. 2편에서 우리는 그 표 문화의 철학적 근원에 도달했다. 文과 禮, 정명, 餘白에 거주하는 것들. 그리고 한·일의 분기가 단순한 미감 차이가 아니라 정명을 시각화하는 두 정치철학이었음을. 3편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마주했다. AI 시대의 변형 압력, 이미 일어난 전자결재의 참극, 그것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다섯 결여, 그리고 회복의 자리.
처음에 나는 표 문화를 비효율로 보았다. 이제 그것이 환원 불가능한 文일 수 있음을 안다. 처음에 나는 양식을 도구로 보았다. 이제 그것이 세계의 현시일 수 있음을 안다. 처음에 나는 문제를 기술에서 찾았다. 이제 문제가 우리가 사유할 언어를 잃은 것에 있음을 안다.
이 시리즈가 답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질문을 다시 던질 자리는 마련하고 싶었다. 결재란 앞에서, 빈 셀 앞에서, 표 안의 표 앞에서,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이것이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자리. 그 질문이 던져지는 곳에서만 文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르는 모든 "승인" 버튼 뒤에는, 수백 년 누적된 정명의 자리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을 고려에 다시 올리는 일 — 그것이 이 글들이 시도하려 했던 작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남겨 둔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모를 때, 우리는 그것을 잃지 않을 방법도 모른다. 첫 번째 일은 그래서 잃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그 앎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어쩌면 文의 작은 회복이 — 또는 적어도, 文의 작은 애도가 —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표 안에 글자를 담아온 그 오래된 손길이, 어쩌면 그 지혜를 우리 대신 기억해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비효율이라 부르며 지워버리기 전에, 한 번쯤은 그 손길의 의미를 물어볼 일이다.
— 시리즈를 마치며.
#368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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